임미해의 노래와 사는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 게임중독에 빠진아이 살려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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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미해입니다. 저는 20여 년간 성악을 했고 대안학교 교사도 했구요. 10여년을 찬양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찬양사역자로 사역하던 중 예배자로서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밭이 기경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을 공부하던 중 먼저 저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구요 제 상처도 직면하면서 상처가 올무가 되어 내 주변의 관계를 다 무너뜨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찬양을 하는 메조소프라노 이스라엘 찬양 사역자 여러가지 저에 대한 명칭이 많았지만 저 자신은 늘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졌었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기경하시는 것을 보고 상담공부와 기도 그리고 찬양사역과 상담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본인 앞에 우리가 서기를 원하시는지를 정확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인거죠.


오늘부터 한 달에 하나씩 제 삶 속에서 일어났던 삶과 관계의 문제를 실제로 경험했던 부분과 제가 상담했던 부모나 자녀들의 문제에 대해서 예를 들어서 이야기 형식으로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들 부모님들이나 자녀분들은 이 얘기 우리 집하고 똑같아하면서 공감이 많이 되실 것 같아요.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우리의 상처나 문제가 뭐 그리 크고 먼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서 늘 상 부딪치는 데서 오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첫 번째 이야기!

게임중독에 빠졌던 아들


오늘은 먼저 우리 집 얘기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저에게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장성해서 서른살이 넘었고 둘째는 이미 결혼도 했습니다. 아마도 제 얘기의 대부분은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내용일 것입니다.

게임중독에 빠졌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아마도 요즘 부모님들 다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일 거에요. 저는 그 문제로 저도 이 아이를 볼 때마다 한숨이 쉬어지고 답답했었던 세월이 7년 가까이 되었는데요. 보통 게임중독 하면 중고등학생 정도로 생각되지요?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초등학교 기간 내내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때 우리 아이와 비슷할 것 같아요 핸드폰으로 하루를 시작하니까요

부모들은 이쯤 되면 이 아이를 포기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고 맨날 아이를 혼내고 소리 지르고 매도 때리고 뭐 난리겠죠. 저도 비슷했어요. 그러고 나면 저 자신이 내가 제대로 된 엄마인가 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그다음 날 되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되는 거죠.


왜 우리 아이가 게임에 빠졌는지를 분석해보면 이유가 두 가지쯤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후에 심리적으로 분석해 본 것입니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습니다. 아기 때에 걸음마를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집 밖을 나가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제가 너무 놀라서 집 밖으로 나가서 이름을 부르며 찾기 시작하면 도대체 어디까지 갔다 온 건지 알 수가 없는데 멀리까지 갔다가 자기 스스로 집으로 찾아 들어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미아가 된 아이를 상상하면서요.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런 아이를 역마살이 있다고 하겠죠. 뭐든지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 덤비는데 조금 지나면 싫증을 잘 내기도 했습니다. 근데 컴퓨터는 다르더군요. 지금 아이들이 스마트폰 없이는 잠도 잘 자지 않는 것처럼요. 문제는 남편의 회사에서 노트북이 생산되면서 전 직원에게 한 개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집에 당시에는 컴퓨터도 비싸서 잘 놓지 않았을 때인데 아빠는 아이에게 일찍부터 컴퓨터를 알게 하려고 그 노트북을 이 아이에게 줘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컴퓨터의 맛을 들이기 시작한 거죠. 그 속에서 온갖 호기심을 다 해결할 수가 있었죠. 5살 무렵 한글을 다 떼고 나니까 너무나 신나게 그것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 시작이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까지 이니까 제가 그 세월을 참고 사는데 정말 그 인내심은 한계를 초월할 지경이었죠. 아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부분 엄마의 마음일 것 같아요. 

게다가 아이가 한글을 일찍 떼고는 어른들 책까지 다 섭렵했습니다. 그것도 호기심인 거죠.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너무 시시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1학년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동영상을 아빠가 찍어 둔 게 있는데 거기에서 자기는 이다음에 이 지구가 환경이 파괴되어 멸망할까 봐 해양도시를 만들어서 그곳으로 사람들 이주를 시키겠다고 했으니까요! 너무 일찍 여러 가지 지식이 아이 안에 있는 것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게임을 시작해서 자기 전까지 하는 거에요. 뺏으면 싸움이 일어나는 거고요. 숙제는 없니? 해도 없다고 하고 친구도 별로 없더군요. 늘 컴퓨터가 친구니까요. 정말로 나로서는 아무런 대책도 해결점도 없이 시간만 지나고 아이가 6학년 즈음에 남편이 인도에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생각 속에 인도가 영어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이 인도에 가 있는 동안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놀러 가자고 아이들에게 말해놓고 나는 속으로 큰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영어공부가 가능한 나라이면 그곳에서 학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당시만 해도 인도에 유학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때였죠. 특별히 우리 큰 아이 같은 경우는 호기심 나는 환경을 만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나름 기대를 한 거죠.


그런데 인도에 가서도 이 아이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게임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어요. 제가 그 아이에게 인도에 가자고 하니까 왜 가느냐고 해서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해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게임 씨디 5장 사주는 것을 조건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것을 중단시키지도 못했죠. 이제는 아이가 덩치가 커지니까 혼을 내거나 매를 들면 제 팔을 잡고 욕을 해대는데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년 짜만 빼고 모든 쌍욕을 다 나에게 쏟아 내는데 전 아이가 마귀에 씐 줄 알았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억울하더군요. 남편은 자기의 출장 기간을 다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와 아이들만 남아있는데 누가 이 아이 좀 말려줘요. 밖에는 할 게 없더군요. 저 아이를 데리고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 즈음에 제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일어났어요. 넌 왜 기도를 안 하니? 아이를 놓고 기도를 안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마음에 들어왔죠. 그때까지만 해도 난 참 교만했었던 것 같아요. 이 아이는 내 아이인데 내가 엄마인데 내가 알아서 키우면 되지 굳이 기도로 매달릴 필요까지 있어? 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저는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버지 난 아무 방법도 모르겠어요. 난 이 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요. 이제는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하나님이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이런 음성이 마음으로부터 들려왔어요 “언제 네가 그 애 편이 되어준 적이 있니?” 난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난 그 애 엄마인데 왜 제가 그 애 편이 아니죠? 라고 반문하며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한 가지씩 떠오르는데 전 항상 그 애 편이 아니라 그 애와 부딪치고 있던 상대방의 편이었더라고요. 이를테면 아이가 누구와 싸우고 집에 들어와서 저에게 그 애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항상 니 가 뭘 걔한테 잘못했겠지 혹은 니가 먼저 사과해 라는 식의 태도였죠. 아마 이 아이는 제가 선생님이지 엄마라고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았어요. 저는 나름대로 아이를 도덕적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키우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것은 선생님들의 용어인 거죠. 엄마라면 아이의 마음을 먼저 살펴줘야 하는건데 말이죠. 

그래서 그날 이후로 저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어요. 인도에 가니까 얼굴이 하얗고 눈이 찢어지고 작은 아이들은 저희 아이들뿐이었죠 국제학교는 학비가 비싸서 로컬 사립학교에 다녔었거든요.

그러니 아이들이 눈 가지고 놀리고 어릴 때니까 자기네와 다르게 생겼다고 놀리는 거죠. 그래서 집에 와서 나한테 아이들이 그런다고 하면 그전 같았으면 한국 사람이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니가 참아 이렇게 말했을 텐데 이제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서 어떤 자식이니 엄마가 혼내줄게. 내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 좀 만날까? 이렇게 말하니까 아이가 상당히 놀라더군요. 그런 내 태도가 세 번 정도 지나니까 아이가 안심이 되었는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더군요. 그렇게 말 안 해줬더라면 아기처럼 징징대는 얘기를 계속했었을 것 같아요.


그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장선생님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다른 나라 아이들이 함께하는 것을 일종의 교육적 효과 측면에서 좋게 보고 우리 아이들을 받아 들여주었지만, 학교 아이들의 느낌은 또 다르니까요.


내 태도는 일단 아이 편에서 인정하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곳까지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래도 열심히 학교 다녀줘서 고맙다고 하고 제 말과 태도가 완전히 바뀌니까 아이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데 사탄의 작용이 놀라워요. 제가 그렇게 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지 제가 너무 고통스럽고 내가 바뀐다고 애가 바뀔까 라는 의심이 들게 하는 거예요. 거의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심정으로 바꿔 갔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그렇게 숙제를 안 하고 숙제가 뭔지도 몰랐던 아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숙제를 하기 시작하고 공부를 하더군요. 한국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교 입학식까지만 하고 인도로 와서 6학년부터 다시 했어요 한국과 인도의 학기가 안 맞기도 했고 공부가 어렵기도 했죠. 작은아이는 4학년 과정이라 내가 아는 단어가 보이는데 이 아이는 6학년 과정이어서 그런지 아는 단어가 하나도 보이지 않더군요. 당연히 아이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으니 게임밖에 할 게 없었는데 나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않니 라며 다그친 거죠. 나의 태도와 말이 바뀌면서 아이는 나와 포옹하기도 하고 엄마 사랑한다고 말도 하는 아이가 되었죠. 그 이후 이 아이는 참 여러 나라에서 중고등학교들 다녔고 대학은 한국에서 마쳤지만 제 마음을 그렇게 힘들게 한 적이 없이 무난하게 잘 모든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기질은 바뀌지 않아서 SUV 차를 한 대 사더니 시간 나고 틈날 때마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살고 있어요.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또 호기심대로 인정하고 키우시면 잘 크더라고요. 먼저 내 아이가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 파악을 해보시고 피플퍼즐 이라는 성격 테스트 같은 것도 받아보셔서 나와 다를 뿐 틀리지 않고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안아 주시면 좋은 부모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하시는 부분이나 질문이 있으시면 좋아요와 댓글로 남겨주시구요. 상담이 필요하신 분이 계시면 이메일(mihae0907@hanmail.net)로 보내주세요.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뵐께요! 모든 부모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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